티스토리 뷰
- 목 차 -
사출 플래시가 생기면 현장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사출 압력을 낮추거나 형체력을 올리는 것이다. 이게 맞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겪은 신규 금형 투입 사례처럼, 플래시의 원인이 처음부터 설계에 있었다면 조건을 아무리 건드려도 위치가 바뀌지 않는다. 플래시 위치와 발생 패턴을 먼저 읽는 법을 알면, 어디를 손봐야 하는지 훨씬 빠르게 좁혀진다.
조건 먼저 의심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
현장의 흔한 접근 방식은 이렇다. 플래시가 나오면 우선 사출 압력을 내리고, 그래도 안 되면 형체력을 올리거나 수지 온도를 떨어뜨린다. 이 순서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공정 파라미터로 해소되는 플래시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금형 요인이 원인일 때도 동일한 순서로 접근하다가 시간을 허비한다는 점이다.
조건을 조정하면 플래시가 일시적으로 줄어드는 경우가 있다. 사출 압력을 낮추면 수지가 틈새를 덜 밀고 들어가니까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이건 근본 원인을 덮는 것이지 해결이 아니다. 벤트 깊이가 기준보다 얕거나 파팅면에 단차가 생긴 상태라면, 조건을 낮출수록 미성형과 플래시가 번갈아 발생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내 판단으로는 이 단계에서 '조건 탓인가, 금형 탓인가'를 먼저 분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판단이다.
플래시 위치와 패턴이 원인을 말한다
금형 요인과 공정 요인을 구분하는 가장 빠른 첫 단서는 플래시가 발생하는 위치의 고정성이다. 조건이 원인이라면 플래시는 파팅라인 전반에 걸쳐 균일하게 나타나거나, 조건 변경 시 위치가 바뀌는 경향이 있다. 반면 금형이 원인이라면 위치가 거의 고정된다. 특정 캐비티, 특정 게이트 반대편, 특정 슬라이드 경계부 같은 식으로.
내가 맡았던 신규 금형의 경우가 딱 이런 패턴이었다. 투입 첫날부터 게이트 반대편 끝단에서만 반복됐고, 사출압을 낮추고 속도를 줄여도 같은 자리에 같은 크기로 나왔다. 위치가 고정돼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금형 문제임을 가리키는 신호였다. 도면을 꺼내 확인하니 해당 부위 벤트 깊이가 0.02mm로, 수지 특성상 권장되는 0.025~0.038mm보다 얕게 설계돼 있었다. 조건을 2주 동안 건드린 게 완전히 헛수고였다.
패턴 분류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공정 요인 가능성이 높은 신호: 파팅라인 전체 균일 발생, 형체력 복원 후 즉시 해소, 수지 교체 후 발생 시작, 온도 상승 시 악화
- 금형 요인 가능성이 높은 신호: 특정 위치 고정 반복, 조건 변경 시 위치 불변, 신규 금형 투입 직후 발생, 특정 캐비티만 선택적 발생

금형 요인의 세 가지 유형과 구별법
금형이 원인이라고 판단했다면, 그다음은 어떤 금형 요인인지를 좁혀야 한다.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는 파팅면 손상 또는 이물질 부착이다. 양산 중 갑자기 발생하고, 금형을 열었을 때 파팅면에 수지 잔사나 이물이 확인된다면 이 유형이다. 면 청소나 재연마로 해소된다. 초기에는 없다가 일정 쇼트 수 이후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둘째는 파팅면 마모로 인한 단차다. 장기 양산 금형에서 주로 나타난다. 파팅면이 반복 압착으로 눌려 단차가 생기면 형체력을 아무리 올려도 완전 밀착이 안 된다. 일반적인 성형품의 치수 불량은 금형에 의한 요인이 약 60%를 차지하며, 금형 마모도 핵심 변수 중 하나다. 마모 판단은 파팅면에 적색 또는 청색 리드를 발라 접촉면을 확인하는 방법이 현장에서 가장 실용적이다.
셋째가 가장 까다로운 설계 단계의 구조적 문제다. 벤트 깊이가 수지 점도에 비해 기준 밖으로 설계됐거나, 멀티 캐비티에서 러너·게이트 밸런스가 맞지 않아 특정 캐비티에만 충진압이 집중되는 경우가 여기 해당된다. 다중 캐비티 금형에서 러너와 게이트가 합리적으로 설계되지 않으면 충진력이 고르지 않아 플래시가 발생한다. 이 유형은 조건 조정으로는 해결이 안 되고 금형 수정이 불가피하다. 내가 맡았던 케이스도 이 세 번째 유형이었고, 수정 이전까지 어떤 파라미터 변경도 효과가 없었다.
공정 원인일 때 확인해야 할 기준
반대로 공정이 원인인 경우, 체크해야 할 핵심 변수는 형체력과 수지 유동성이다. 형체력이 부족하면 수지 충진압이 형체력을 초과하는 순간 금형이 미세하게 열리면서 플래시가 발생한다. 형체력을 원래대로 복원했을 때 플래시가 즉시 사라진다면, 이는 공정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수지 점도 문제도 주목해야 한다. 수분 흡수율이 높은 소재(PA, ABS, PC 등)는 건조 상태에 따라 용융 점도가 크게 달라진다. 특히 소재를 교체한 직후에 플래시가 새로 발생했다면 오버플로 기준값 차이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 PC 소재의 오버플로 값은 0.06mm이고 PBT 소재는 0.02mm인데, 금형을 PC 기준으로 설계한 상태에서 PBT로 교체하면 플래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금형 수정이 맞는 대응이지, 조건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보통 형체력 부족이 원인이면 압력을 복원하는 것만으로 해소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케이스에서는 형체력을 기존 대비 15% 낮췄다가 복원한 후에도 특정 캐비티에서만 플래시가 재발했다. 확인해 보니 캐비티 간 밸런스 불균형이 겹쳐 있었다. 단순히 조건 원인이라고 판단하고 끝냈으면 근본 요인을 놓쳤을 상황이었다.
실무에서 쓰는 판단 순서
현장에서 내가 실제로 쓰는 순서는 이렇다. 첫 번째, 플래시 위치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조건을 변경한 전후 위치 변동 여부를 확인한다. 위치가 고정이면 금형 요인으로 우선 분류한다. 두 번째, 금형 요인으로 분류됐다면 파팅면 육안 점검 → 리드 접촉 확인 → 도면 벤트 깊이 및 러너 밸런스 검토 순서로 진행한다. 세 번째, 공정 요인으로 분류됐다면 형체력 확인 → 수지 건조 상태 → 소재 오버플로 기준값 대조 순서로 좁힌다.
이 순서가 절대적인 건 아니다. 실제로는 두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조건 변경 후에도 위치가 고정"이라는 신호 하나가 확인되면, 그 이후 조건 파라미터를 더 건드리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본다. 금형 점검을 먼저 당기는 게 결과적으로 빠르다.
플래시는 위치부터 읽는 것이 출발점이다
사출 플래시를 조건 문제로 단정하고 파라미터만 반복해서 건드리는 건 방향이 틀린 접근일 수 있다. 플래시가 어디에, 어떤 패턴으로 나타나는지를 먼저 기록하고 분류하는 것이 시간을 가장 아끼는 방법이다. 위치가 고정이면 금형 점검을 먼저 당기고, 균일하게 번진다면 조건과 소재를 검토하는 순서가 실무에서는 훨씬 효율적이다. 조건 조정은 가역적이지만 금형 수정은 시간과 비용이 따른다는 점에서, 원인 분류의 정확도가 곧 비용 관리로 직결된다.